국민학교 2학년때 학교에서 적성검사를 한 적이 있다. 검사과정은 잘 기억이 안나는데, 검사결과표는 기억이 생생하게 난다. 그때 내 적성에 맞는 직업으로 나온 것이 '공무원, 회계사, 사회복지사 등등' 그 중 내 눈길을 끄는 것은 다름 아닌 '사회복지사'였다. 왜 나의 눈길이 그곳으로 향했는가? 내안에는 나도 모르는 남을 도와주고 싶은 마음이 있었던게 아닐지. 아니면 가난한 어린 시절의 삶을 벗어나기 위해, 나와 같은 처지에 있던 사람들을 도와주고 싶었던건지.. 여러가지 생각이 들었었지만, 내 성향이 그러니까. 라고 결론내어 버렸다.
시간이 흐르고 흘러 머리가 점점 커지고, 어릴 적 받았던 적성검사의 결과는 일부러 기억하지 않는이상, 다시 기억하지 않게 되었다. 막연히 지금보다 자리를 잡게되면, 형편이 어려운 집안의 학생들에게 공부며 등등을 알려주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 지금도 이 생각엔 변함없다. 그렇지만 나는 마음속으로만 이런 생각을 가졌다. 고등학교 봉사활동 할당 시간만 채웠을 뿐, 자발적으로 봉사활동도 한 적도 없고, 약자를 위해 도움의 손길을 주지도 못했다.
오늘 저녁때, 스터디 모임에 도착할 시간이 빠듯하여 계속 뛰었고, 신호등에 서서 파란불이 바뀌기만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런데 갑자기 누군가 말을 거는 것이 아닌가. 누군가 했다. 휠체어를 탄 할아버지였다. 그 건널목부분이 요즘 지하철 공사로 인해, 바닥을 인공구조물로 바꿔놓아서 바닥이 울퉁불퉁하고 그렇다. 내게 휠체어로 건널목만 건너게 도와달라고 하셨다. 나도 늦었고 해서 잠시 고민을 했다. 손은 이미 휠체어를 잡고 있으면서...
내 사정이 급하다는 이유로, 처음 밀어보는 휠체어를 속력을 내어 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중간에 정신이 번쩍 들어, 할아버지께 너무 빠른건 아닌가요? 제가 처음 몰아봐서.. 불편하시면 말씀해주세요. 라고 말을 건넨 후 열심히 밀었다. 앗 이런. 건널목 끝부분이 살짝 아래로 움푹 파인게 아닌가. 아뿔싸. 할아버지보다 체구가 작은 나는 힘껏 밀어서 고비를
넘겼다. 휴, 다행이다. 그러나 또 다른 난관이 기다리고 있었다. 이번엔 작은 길이 살짝 경사져 있었다. 평소의 나였다면 뛰어가면서 지나쳐서 경사가 얼마나 위험한건지 알 수 없었을 거다. 정신 바짝 차려야지 라는 생각으로 그 경사진 길로 가기 시작했다. 이런. 역시나 아래로 미끌어지고 만다. 자, 다시 힘을 주고 으라차차. 또 횡단보도다. 아까 큰 건널목보다 작지만, 길은 울퉁하게 튀어나와서 바닥에 신경써야 했고, 신호등도 없어서 양쪽 옆으로 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확인도 해야했다. 새삼 내가 편하게 세상을 살아왔다는 느낌이 들었다.
드디어 내가 버스를 타야할 정류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할아버지의 목적지는 정류장을 한참 지나서였다. 조금 고민하다 결국 정류장을 지나서 험한길이 끝나는 곳까지 할아버지를 도와드렸다. 할아버지는 내게 고맙다며, 악수를 청하셨고 나는 기쁜마음으로 손을 맞잡았다. 내가 하찮게 생각하는 나의 힘이 이렇게 누군가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 참으로 기뻤다. 물론 나는 스터디모임에 늦었고, 추웠던 날씨와는 반대로 땀을 뻘뻘 흘렸지만, 마음만은 배불렀다.
내가 지금까지 쉽게 지나다니던 길, 보도블럭들. 누군가에겐 지나기도 벅찬 곳이었다는 것을 직접 겪어보고야 알았다. 평탄치 않은 길을 지나면서 할아버지에게 '강서구청장은 이런걸 잘해놔야하는데.. 이런건 왜 신경쓰지 못한거지' 라고 푸념섞인 말도 전했더니, 할아버진 그냥 웃으신다.
며칠 전, 장애인의 날이어서 tv에서 '강영우 박사'에 대한 특집기획 다큐를 본 기억이 났다. 그는 사고로 인한 시각장애인이었지만, 현재 미국 백악관 국가장애위원회 정책차관보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치고 있다. 그가 장애인을 위한 여러정책을 냈고, 실제로 구현된 것이 많다. 컴퓨터 이메일을 전화를 읽어주는 서비스를 예로 들 수 있다.
매년 연말에 남는 예산으로 보도블럭이나 뒤집고 다시 깔지 말고, 누군가를 위해 도로정비를 하는 것은 어떨지?
여러가지 생각이 난무하는 밤이다.